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푸른방송 뉴스

[사람과 현장 사이] 을미의병 효시, 의산 문석봉
02-20 작성자 : 관리자 조회수 : 133


낙동강이 굽이쳐 흐르는 #달성군 현풍.

평온해 보이는 이 마을에서, 1895년 조선의 운명이 흔들리던 순간 가장 먼저 칼을 들었던 인물이 있었습니다.


항일의병의 불씨를 지폈고 을미사변의 효시로 추앙받았던 의산 문석봉 선생의 삶과 현장을 찾아가봤습니다.


[향토사학자 우남희]

#의산 문석봉 선생은 현풍에서 태어나셨어요. 

우리나라의 의병 활동이 일어났을 때는 보통 임진왜란때도 의병이 있었고 #을미사변 이 일어나면서 의병이 있었어요.


1895년 8월. #명성황후 가 일본 낭인들에 의해 궁중에서 시해되는 을미사변이 일어났다.


[향토사학자 우남희] 

을미사변 이후 봉기한 최초의 의병장입니다. 

이분에 대해서 지역민뿐만 아니라 전국에서도 많이 알지를 못하는데 

뒤늦게 현풍 느티나무 (아래에서) 거기에서 문석봉 선생의 옷이 

발견되었다는 정보를 듣고 우리가 문석봉 선생을 찾게 되었습니다.


#문석봉 선생의 의병활동은 을미의병의 기점으로서, #단발령 직후 전개되는 반일 의병투쟁의 촉발제 구실을 수행했다는 점에서 그 의의를 찾을 수 있다.


[배상천 달성문화원장]

46세에 의병장군이 돌아가시고 그 유족들이 보관하고 있다가 일본군들이 찾아와 

그 유품을 내놓으라하기에 밤에 몰래 담을 뛰어 넘어 (느티나무아래) 땅에 묻어두었던 것입니다. 

주로 유품은 관복, 대검, 그 외에 화살, 활 등이 있었습니다. 

해방 이후에 다시 발굴하여 천안 독립기념관에 소장되어 있습니다. 


[향토사학자 우남희]

그 후 선생의 업적을 기려서 1993년 건국훈장독립장이 추서되었습니다.


[문희용 / 의병장 의산 문석봉 증손자]

증조할아버님께서는 학문이나 침술 등 공부를 하셨다고 

할머니나 아버지께서 제사 때나 종종 말씀해 주셨습니다. 

어머님 말씀으로는 증고모할머니께서도 이웃에 사셨고... 

(지금은) 생가터만 남아있지만 마을 입구라든지 현풍 초입이라든지…

할아버님의 함자가 새겨진 것이 없는 게 아쉬운 점이 있고요.

자손으로서 많이 노력하도록 하겠습니다.


[배상천 달성문화원장]

의병을 하신분들이 제일 가슴 아프고 고맙기도하고 그에 대해 다 하지못함이 늘 아픕니다. 

학생들도 교육이 되어야 하니까 관이 주도해서 좀더 힘써주셨으면 하는 마음입니다.



#달서구 #달성군 #뉴스 #의산문석봉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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